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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꿈꾸기

첫 남국의 바다를 기억하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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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남국의 바다를 기억하다. ②

 

 

 

 

어디선가 기적같은 소리가 메시아처럼 들렸다.

"룸~ 천페소오오오~~"

 

방? 게다가 1000페소?

기적적인 그 소리에 절망하던 내 심장에는 불이 켜지고 내 머릿속에는 별이 떠올랐으며

눈이 번쩍 뜨인 심봉사가 되었다.

아저씨 아저씨!!! 나!!나!! 그방 내방!!!

손을 번쩍들어 아저씨에게 달려갔고

아저씨는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구불구불...골목을 지나, 가로등이 켜진곳을 이미 지나 어둠도 지나,

개들이 짖어대는 주택가를 지나, 밭냄새가 나는 듯한 공터도 지나...지나...가니

희미한 가로등 아래 삐걱대는 대문이 하나 보인다.

친절한 아저씨는 가는 동안에 찾아오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고,

비록 아무리 설명 들어도 절대 다시 찾아오기 힘들만큼의 거리였지만, 아저씨의 친절은 칭찬할만했다.

그래 뭐, 바다랑 멀면 좀 어떠랴. 이렇게 아쉬운 마당에 이거라도 감사할지경이야.

바다는, 낼 아침에 보지 뭐~

 

끼익~ 허름한 대문을 열고, 아저씨가 살고있는 본채를 지나 안내를 받은 나의 방...

 

방...

방..........이라 불러도 되는지 부터 생각해봐야겠다.

 

일단 벽이 있다. 아니..벽 있다.

사각으로 세워진 그 벽에는

벽지하나 발라져 있지 않아 회색 시멘트를 누드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미쳐 천장까지 시멘으로 하기에는 기술력이 부족했는지,

골이 파인 양철판 그대로를 엉성하게 얹혀 놓았다.

그 사각벽 안에는 폐 병원에서 버린 듯한 허름한 병원침대 같은게 덜렁! 놓여져 있었으며,

침침해 눈을 자꾸 비벼야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전등 아래에서도

침대의 녹물의 얼룩이 여실히 보이는 듯 했다.

침대를 지나 2발짝을 걸어가면 작은 칸막이가 나온다.

칸막이 뒤로는...

문짝은 고사하고 커텐하나 쳐지지 않은 채 변기가 누렇거나 시커먼 구멍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바가지와 함께 수도꼭지 하나만이 물방울을 똑똑 거리고 있었다.

 

여긴...

감방이었다.

 

올드보이 민수아저씨가 이런곳에서 만두를 먹고 있었을까.

 

 

그래도 노숙보다 낫지 않을까 라는 애써 자기 위안적인 생각을 하며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본다.

짐을 놓을 곳도 필요하고, 밤 사이 눈을 붙일 곳도 필요해.

그래...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거야.

하루만, 해뜰때 까지만 참아보자.

 

침대는 내가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짙은 쇳소리를 내면서 삐걱거리고 있었고,

침대 위 이불을 장마철 습기먹은 스폰지 모냥으로 눅눅하기 이를데 없었다.

입고있던 남방을 꺼내서 이불위에 살포시 깔고 등허리를 살짝 침에위에 붙여보았다.

쫌만...피곤하니까..세상모르고 잠들어버리면 되자나~ 해뜨면 바로 바닷가로 나가는거야!

라고 정말 애써애써...위안을 하고 있는데,

 

천장위로 뭔가가 후다다다닥 지나간다.

윙윙거리는 파리 모기따위에는 이미 놀라지도 않지만,

약간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쿵쾅거리는 '무언가'에는 약간...아니 극렬한 공포심이 느껴진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넘이 어떤넘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호기심으로

내 두눈은 열심히 동공을 넓혀가며 소리를 쫓았다.

 

갑자기 크으다란 .....

발이 여러개 달려서 사람을 위협하는 그.넘.이...천장에서 떨어졌다.

파리보다 크고, 모기보다 뻔뻔하며, 더러운곳에 주로 존재하고, 가끔 날개를 달고 사람을 위협하는 그넘...

 

으아아아아악!!

 

가방을 냅다 들고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쥔장에게 얘기해서 괜히 설득당하고 싶지 조차 않다.

여긴 감옥이야. 어서 도망가야해.

 

뒤도 안돌아보고 냅다 뛰었다.

길이 많이 헷갈리고 어둠으로 뒤덮혀 무서웠기에..더욱 냅다 뛰어야 했다.

골목에 골목과 어둠과 가로등을 지나니..

멀리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해지고,

바닷가 유흥객들의 취기 섞인 흥겨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휴...

바닷가까지 무사히 찾아왔구나.

 

 

방에 대한 무서움만으로 무작정 들입다 뛰어오긴 했으나, 대책이 없다.

난. 다시 한시간전의 갈곳없는 그지 신세로 돌아간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눈물이 찔끔!

바닷가에 앉아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니

노천 나이트 클럽에서 신나게 부비부비 몸을 흔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레게 음악에 흥겨히 칵테일을 한잔 마시며 놀이상대를 찾는 젊은이들도 보인다.

테이블에 촛불켜고 오늘밤을 핑크빛으로 보낼 눈빛을 교환하는 연인들이 보인다...

 

모두...

행복해보였다.

 

가방을 꼬옥 끌어앉고,

동정심 유발할 대상도 없는데, 예의 그 불쌍하기 짝이없는 왕따 표정을 하고서는...

나는...그렇게 바닷가에서 밤을 지샜다.

 

 

나의 첫 남국의 바다 노숙기...ㅜ.ㅜ

 

 

 

내 눈에 비친 유흥 바닷가..;;

 

 

 

그렇게 맞이한 아침...

 

취객들의 흔적들과, 파티 다음날의 스산한 적막과 함께...눈을 떴다.

아침을 맞이해 구멍으로 눈알을 빼꼼히 꺼낸 게들이 깜짝놀라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여전히 내 품에는 꼬옥 끌어안은 가방이 팔뚝에 자국을 내며 박혀있었고,

새벽의 을씨년 스러운 바람은 회색빛 기운과 함께 나를 여전히 서글프게 만들고 있었다.

 

이럴순 없다. 이럴순 없다.

나의 로망인 남국의 바다는 이럴 순 없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아침 7시가 되자마자,

나는 내가 서있는 그곳에서 보이는 가장 좋아보이는 리조트로 갔다.

비록 노숙으로 인해 모습은 꽤죄죄하지만, 방나오면 냉큼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가격따윈 상관하지 않겠다고, 당장 방달라고!!

1박2일이었던 예정따윈 없다.

난 기필고 여기서 휴양을 하고 가고야 말겠다.!!

 

다시 되돌아보면...그 좋았던 리조트가...그래도 아주 최고급 힐튼 따위가 아니었던게 다행이다.

분명 홧김에 묵었을텐데..그럼 나는 마닐라로 돌아와 당장 한국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인 비치는 아니었던 탓에, 내가간 젤 좋아보이는 리조트도...다행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 가격 수준에 비하면...

그곳은 천국이었다.!!!

 

 

요기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물에 목욕재게를 하여 노숙의 때국물을 벗기고

케노피가 쳐져있는 곱다라한 침대에 몸을 뉘이고 기절한듯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어제의 악몽을 잊고 휴양지에 놀러온 아해답에 흥청망청 놀아주었다.

고기 음식도 먹고, 바닷가 썬텐도 하고, 트랜스젠더 아줌마가 하는 칵테일바에서 흥겨히 칵테일도 마셔주면서...그렇게 어제의 행복해보였던 사람들처럼 놀아주었다.

누군가...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봐주길 바라면서~

사실, 둘째날은, 어제와의 극렬한 대비로 인해...진정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역시 흔들린 사진,

이상, 비행소녀의

첫 남국 바다 노숙의 기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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